발렌시아가 Balenci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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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52회 작성일 21-11-0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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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BALENCIAGA프랑스의 명품 패션 브랜드.

2. 상세[편집]

Balenciaga Clones Spring 22 Collection

1937년부터 파리에서 컬렉션을 개최하였으며, 까다로운 최상류층 베스트 드레서 고객들에게 우아함과 기품을 갖춘 완벽한 품질의 의상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대중 언론을 기피하고 기성복 라이선스 사업 또한 거절하였기에 발렌시아가의 대중적 명성은 디올에 한발 물러서 있었지만 패션 종사자들로부터는 완벽주의자, 쿠튀리에들의 스승, 패션의 미래를 창조하는 혁신가로 존경받았다. 샤넬에 따르면 발렌시아가는 구상, 재단, 봉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상 제작 과정을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쿠튀리에였고, 스키아파렐리는 자신이 패션에서 이루고자 한 바를 다 이룬 쿠튀르 계의 진정한 예술가라고 평가했다.

발렌시아가는 고객의 요구와 자신의 엄격한 기준을 따라 오직 최고의 의상을 제작하는 데 몰두했고, 그 순수한 작업 과정에서 새로운 재단과 형식의 창조를 통한 패션의 혁신을 이끈 발렌시아가의 세계는 기성복과 패스트 패션이 주도하는 오늘날에도 명품 패션 브랜드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3. 역사[편집]

3.1.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편집]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재단의 마법사라 불린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1895년 스페인의 한 어촌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고 옷을 만들던 어머니를 따라 옷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옷을 만드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탓에, 그가 13세가 되던 해 마드리드에서 카사 토레스 후작 가족의 별장에 놀러간 그는 후작 부인이 입은 드레스를 빌려가 며칠 후 부인에게 똑같이 만든 옷을 내보였다. 카사 토레스 후작부인은 프랑스 장인이 만든 오트 쿠튀르 옷보다 더 꼼꼼한 그의 바느질 솜씨에 감탄하였고, 그를 산 세바스찬에 있는 부티크에 추천했다. 이후 부티크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뛰어난 바느질 솜씨와 완벽주의를 고집하는 성격으로 스페인에서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었으나, 1937년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 장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자신의 이름을 딴 '발렌시아가' 부티크를 1937년 8월에 오픈했다. 17세기 화가 벨라스케스에게서 영감을 받은 첫 번째 파리 컬렉션으로 하루 만에 파리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프랑스 패션에 공헌한 것이 인정되어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오트쿠튀르보다 프레타 포르테가 패션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꾸뛰리에로서의 자존심을 지닌 발렌시아가는 은퇴를 선언했다.[2] 이후 4년이 지난 1972년 사망하였다.

3.2. 니콜라 제스키에르[편집]

압도적인 실력의 꾸뛰리에였던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죽은 이후 발렌시아가는 예전의 명성을 잃게 된다. 샤넬크리스찬 디올과 동시대에 활약하면서 당시에는 그들보다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 일반인들에게 알려져있는 명성이 샤넬이나 디올보다 떨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런 발렌시아가를 단숨에 살려놓은 디자이너가 니콜라 제스키에르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발렌시아가...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발렌시아가...
니콜라 제스키에르 체제의 발렌시아가

1996년 26세(!)의 나이로 발렌시아가를 다시 일으킨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 이후 스타 디자이너를 배출하지 못하고 미국, 영국 등에 밀려났던 프랑스 패션계의 새로운 스타 디자이너다. 일명 '모터백'이라고 불리는 가방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할리우드 스타들과 친분이 많다. 대표적으로 니콜 키드먼과 크리스틴 스튜어트 등.

2013년 발렌시아가를 떠나고 LVMH 산하인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3.3. 알렉산더 왕[편집]

알렉산더 왕의 발렌시아가
2012 F/W 컬렉션

제스키에르의 후임으로는 영국인 패션 디자이너가 유력하게 거론되었으나 그 자리는 알렉산더 왕이 들어왔다. 이름에서 보이듯 대만계 미국인으로, 2007년 20살이 조금 넘은 나이에 자신의 패션 하우스를 열어 성공을 거둘 만큼 탄탄대로를 걸어온 남자. 젊은 나이에 발렌시아가 수석 디자이너를 할 정도면 짬이 좀 부족해도 남다르긴 하다. 국내에서는 알렉산더 왕 X H&M 콜라보레이션로 한국에서도 인지도를 쌓았고 알렉산더 왕의 독점판권을 두고 제일모직과 신세계인터내셔날을 싸움 붙였을 정도로 현재는 알렉산더 왕의 한국 인기는 꽤 탄탄한 편. 초반의 총알백을 비롯해서 많은 가방들이 한국에서 꽤나 높은 가격에 술술 잘 팔렸고, 이런 인기는 H&M과의 콜라보레이션 때 활약한 리셀러들에 의해 증명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실상 뉴욕 패션위크의 신성이나 다름없는 스타 디자이너.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2016년 S/S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2015년 7월 29일 발렌시아가에서 짤렸다.

해고 이유를 말하자면 구 시즌에 나왔던 피스 디자인들을 너무나도 우려먹었으며, 무엇보다도 특유의 알왕식 감각으로 발렌시아가라는 느낌(단순히 표현하자면 포르테 포르타에 녹아든 쿠튀르적 디테일)은 싹 뺀 군더더기 없는, 재미없는 상업적 디자인을 계속 찍어냈다는 것이다. 발렌시아가 옷들의 본연 80%를 중국산 염가 하청 업체에 맡겨놓고 나머지 20%는 이탈리아에서 최종 손질을 해서 옷 제작을 하게 만들어버린 주범이기도 하다.[3] 컬렉션 피스라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빡센 디자인만 지겹도록 찍어내는 발망과 아주 판박이다. 잡지나 셀럽들이 꼭 둘 중에 하나만 까지않고 둘을 엮어서 까는 것도 둘이 요즘 브랜드가 개판으로 가는 과정이 똑같은 게 그 이유다. 색도 거의 무채색만 썼으며, 매 컬렉션마다 반응은 암울 그 자체. 이젠 더 이상 쇼가 기대되지 않는 브랜드라는 말이 다수였다. 게스키에르가 발렌시아가 재임 시절 너무나도 레전드여서 그가 게스키에르만큼 멋진 옷들을 보여주지 못해 대비되어 해고된 게 아니라, 너무나도 발렌시아가와는 동떨어진 옷들을 만들어내서 해고된 것이다. 애초에 H&M이랑 협업했을 때 터져나왔던 악평들이 그를 해고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지도.

애초에 알렉산더 왕은 미국 파슨스 디자인 스쿨를 졸업했으며, 마크 제이콥스처럼 디자인에서 상업성이 확 드러나는 뉴욕 레이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쿠튀르적이고 자유로운 느낌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고 오트쿠튀르를 발판으로 시작되었던 발렌시아가는 알왕에게 있어선 메이저 디자이너로서 짊기엔 시작부터 매우 무리였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아직 20대인 디자이너로서 많은 경력이 없었던 것도 틀림없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알왕 본인의 스타일을 은근히 스며들게 한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 쳐박아두었기 때문에 발렌시아가의 쇼인지 알렉산더 왕 개인 브랜드의 쇼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실제로 알렉산더 왕이 발렌시아가를 맡은 이후 자신의 네임을 딴 레이블의 매출도 수도 없이 떨어져 나갔고, 발렌시아가도 엄청나게 매출이 떨어져 버렸다. 이젠 해고됐으니 자신만의 레이블 하나에 열심히 몰두할테니, 대중 말고도 알왕 자신한테도 나름 축복일지도. 대표적인 예로 꼼데가르송 트리콧 라인의 메이저 디자이너인 구리하라 타오랑 마크 제이콥스는 타오 자신의 네이밍이 들어간 브랜드랑 루이비통에서 퇴직한 이후 트리콧이랑 마크 제이콥스 자신의 브랜드에서만 컬렉션에 온갖 신경을 몰두했는데, 한 브랜드에만 일을 해온 이후로 컬렉션에 대한 완성도가 상당히 훌륭해졌고 호평이 일색이었다.

그래도 첫 데뷔 컬렉션이랑 마지막 컬렉션은 나름 호평이었다. 아무래도 첫 데뷔 때는 누구라도 대충으로 만들지는 못하니깐 프로토타입마냥 첫 컬렉션에서는 온갖 주의를 기울여서 만들고 그 이후의 컬렉션들은 양산형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알렉산더 왕 해고 이후 차세대 디자이너는 아직 누구를 데려올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제스키에르가 생판 모르는 신인으로 데뷔했을 때처럼, 다음 디자이너도 잠재력이 엄청난 신인 디자이너로 데려와서 데뷔시켰으면 좋겠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 지금의 패션계는 성공한 자들만의 리그나 다름 없어서[4] 이미 활동중이거나 다른 브랜드도 맡고있는 디자이너를 데려오지 말고 풋풋하고 신선한 신인 디자이너들이 많이 배출되어서 비좁은 패션계의 폭이 넓혀져 되어야 한다고. 만약에 그런 신인 디자이너를 궁색하게 된다면 발렌시아가와의 아이덴티티가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수많은 까다로운 시험들을 걸어야겠지만 말이다.

3.4. 뎀나 바잘리아[편집]

2015년 11월, 드디어 알렉산더 왕의 뒤를 이을 후임이 정해졌다. 바로 베트멍의 뎀나 바잘리아가 그 주인공. 마틴 마르지엘라와 루이비통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그는, 마르지엘라의 뒤를 잇는 해체주의로 유명하며, 최근 소매가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괴랄한 룩을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2016 F/W 컬렉션으로 발렌시아가 데뷔전을 마쳤으며, 아직 지켜봐야 알겠지만 베트멍의 힙함과 발렌시아가의 유산을 적절하게 잘 사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했다는 평가가 주된 반응이다.

그리고 2017년 발렌시아가의 선택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베트멍에서 그동안 뎀나가 선보여왔던 벨기에식 해체주의와, 현재 패션 트렌드를 강타하고 있는 스포티한 이미지를 결합하여, 한물 간 프렌치 락시크를 표방하고 있던 발렌시아가의 아이덴티티를 완전히 탈바꿈 시켜놓았다. 사실 발렌시아가 정도나 되는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시즌의 전 제품군이 핫해지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 들어가보면 티셔츠, 후드티를 포함한 대부분의 제품이 품절이다. (패션 하우스의 주력 상품은 대개 의류보다는 가방, 지갑 등의 가죽 제품이나, 스카프, 선글라스 등의 패션 악세사리다.) 뎀나의 발렌시아가는 최근에 디자이너를 교체하고 가장 핫한 브랜드로 재도약한 구찌의 아성마저 넘어버렸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발렌시아가 스피드
2017 S/S 스피드 트레이너

2017년 S/S 시즌에 선보인 양말같은 형태의 운동화 스피드 트레이너로 성공을 거두고,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2017년 F/W 시즌에 거대하고 두꺼운 운동화 트리플 s를 선보여 소위 말하는 청키 슈즈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서는 유럽 내 정가(595파운드)의 2배 가까운 가격에 리셀가를 형성하고 있는 중.

2018년을 기점으로 얄쌍하던 기존 폰트의 세로를 늘리고 현재의 두꺼운 버전으로 변화시켰다. 한편 뎀나가 온 이후 좋은 평만 들어오던 브랜드는 2018년 S/S 시즌 이탈리아산이던 남성용 트리플 S마저 중국산으로 돌리는 동시에 가격도 올려버리며 브랜드 이미지를 망치는 행위로 질타를 받기 시작하고 있다. 착화감은 좋은데도 불구하고 신발 자체가 지나치게 무거웠던 문제는 개선되었지만, 트리플 S 특유의 워싱은 여성용처럼 모두 사라져버렸다. 여기에 기존의 모자 라인까지 중국산으로 바꾸고 2018년 F/W 발표된 제품들이 점점 뎀나 본인의 브랜드화 되어가고 있어 우려가 늘고 있다.

다만 아크네디올, 루이비통, 샤코보코를 청키 버전으로 부활시킨 샤넬 등 많은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발렌시아가가 세운 트렌드에 편승하고 있으며, 그 중 트리플 s에 그나마 대적할만한 게 구찌의 라이톤밖에 없을 정도라 여전히 트랜드의 제일 정점에 있다는 부분만큼은 분명 긍정적인 면.

물론 말했다시피 중국산의 비중이 매우 높고 브랜드가 핫한 만큼 품질을 잘 챙기지 않기 때문에 비싼 돈을 줬다고 고품질을 기대하면 안 된다. 품질을 중요시하면 발렌시아가나 구찌생로랑같이 트렌드 세팅에 올 인하는 브랜드를 찾을 게 아니라 오히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명품 브랜드들로 가야 한다.

그리고 뎀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취임 이후에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황당한 제품을 많이 내놓는 편이다. 예를 들어 244만원 짜리 이케아 장바구니라든가 200만원 짜리 종이 가방[5] 같은 디자인이 그 예다. 심지어 잘 팔린다. # 물론 이 제품들은 외양만 그럴 뿐, 제작 과정은 일반 하이패션 브랜드의 가방 제작 기법 및 재료를 고스란히 사용했다. 그냥 패러디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나을 듯. 허핑턴 포스트같은 유사언론 매체에서 디자인과 가격만 언급하는 바람에, 패션에 별 관심없는 일반 대중들은 다들 비닐 가방을 200~300만원대에 판매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상당수의 황당한 물건들이 매진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즌에는 아예 자동차 매트를 그대로 말아버린 듯한 스커트를 선보였다.

이미 언급됐지만 현재 발렌시아가의 주가를 최고조로 올려놓는데 쐐기를 박았던 트리플 S를 중국산으로 돌림으로써 많은 소비자들의 원성을 받고 있다. 중국산으로 아예 생산공장을 옮김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동결 혹은 상승시키고 당연히 퀄리티는 떨어졌다. 17 F/W의 빈티지한 워싱은 아예 사라져 버린탓에 오히려 워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중국산 가품에 가까운 느낌의 제품들이 생산되는 참사가 발생하고 있다.

중국산으로 옮긴 것은 어찌보면 본인들의 무덤을 판 것이나 다름없는데, 당장 단기적으로는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 1000족 신경써서 만들어 파는 것보다 값싼 중국산 노동자들이 10만족 만들어서 많이 팔아버리는 것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는 있다. 그러나 브랜드 이미지를 생각하면 디자인만 예쁘고 가격만 높지 실질적으로는 중국산이라 저렴하다는 이미지가 씌워져버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큰 타격이다. 사실 100년에 가까운 역사의 브랜드가 그런 것을 몰랐을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고 높은 판매량을 믿으면서 바이어들을 호구로 보고 오만하게 현재의 판매량에 타격이 없을 거라 믿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유의 탱크같은 중창으로 인해 무게가 상당한 트리플s 뿐 아니라 발렌시아가의 몇몇 제품은 예쁘긴 하지만 비실용적이며 가격값을 못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데 비싼 돈을 주고 산 패딩이 오리털도 아니고 솜패딩같은 원가 절감도 많은 바이어들이 현재의 발렌시아가를 비판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나마 2018년 F/W에 발매 예정인 아이젠과 퓨전된 듯하며 유니크하게 신발끈이 2개나 있는 트랙 슈즈가 마치 작년의 발표 직전 트리플 s처럼 현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사실상 여기에 희망을 걸어야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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